지나는 독일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다. 많이 소심했지만, 내가 말을 걸면 성심성의껏 답하려는 태도에 감사했다. 5살 된 아이와 휴가차 몰타에 왔고, 나같이 본인 공부와 아이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여름휴가는 즐기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몰타에 몇 안 되는 한국식당을 소개하고, 한국음식에 대해 소개를 해줬다. 한국의 잡채나 김밥, 불고기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좋아했다. 지나에게 불고기덮밥과 김밥을 추천해 줬고, 아이도 지나도 모두 잘 먹었다. 한국의 음식 문화가 궁금했는지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만드는 조리법, 재료 등...
영어 실력이 모자라는 건 사실이지만, 회사에 다닐 때나 여기서나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설명은 어려웠다. 재료의 이름을 다 모를뿐더러, 사용되는 동사는 평소에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다 보니,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을 먹고, 다음에 남편이 몰타에 들어오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나와 약속한 저녁날이 왔다. 지나의 남편은 독일에서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내 느낌으로는 한국의 케이티나 에스케이티 같은 곳인 것 같았다.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많이 일반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전혀 상상도 못 할 상황에서 독일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육아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국은 재택을 한다고 하면, 일단 논다는 편견이 만연한데, 독일은 당연한 일이고, flexiable working time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사실 워킹맘 입장에선 너무나도 필요한 제도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것이 큰 난관임을 알기에 내가 엄청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들었던 게 기억이 난다.
독일도 이민자들이 많아서 일까, 타문화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며,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각 나라의 음식은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본인의 취향과 맞지 않아도 그 냄새를 참아 준다던지, 그 냄새에 대해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방식의 타문화 존중을 교육받고,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그 부분은 참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난 청국장을 좋아하지 않아, 주변에서 청국장을 먹고 오면, 그 냄새를 질색하곤 했는데, 참 반성이 되었었다.
지나의 남편이 차를 렌트해준덕에, 우리 숙소에서 1시간 30분은 가야 하는 마샬슬록에 30분 만에 도착해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그곳은 몰타의 유명한 어시장이다. 매일 아침 싱싱한 해산물이 들어오고, 오전 10시가 되면 문을 거의 닫는다.
물론, 그 인근에 있는 식당은 모두 그날 들어온 싱싱한 해산물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싸서 먹기 힘든 도미 같은 생선이 25유로 정도면 먹을 수 있으니, 엄청 싸다. 아! 그리고, 또 논란 것 한 가지, 생선을 시켰더니, 머리, 지느러미를 모두 포함하여 조리해 나온다. 너무 놀라서 점원에게 "왜? 머리, 꼬리를 자르지 않나요?"라고 물으니, " 그것이 없으면, 사람들이 신선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이라는 것이었다.
아흐... 어찌나 부담스럽고 싫던지, 우리나라에서 처럼 먹기 좋게 조리해 나오는 것은 유럽에선 포기해야 했다... 지금도 싫다..ㅋㅋ
독일의 여러 가지 생활상, 특히, 샐러리맨의 생활상을 아주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놀란 일은, 밥값을 계산하려는데 갑자기 지나와 남편이 전체 식사값의 절반씩을 각각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본인들이 사겠다고 하면서, 지나와 남편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어리둥절해 그 앞에서는 웃고 지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 사람들은 아내와 남편이라도 철저하게 더치페이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조건 생활비도 반반씩 낸다 했다. 공평하긴 한데, 어느 부분은 참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서에는 맞지 않는 상황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친절한 지나 가족은 나와 아이를 늦은 저녁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잊지 않는 인사 "비쥬"!!! 아흐~~~ 너무 적응 안 되는 문화다.. 그렇게 얼떨결에 또 비쥬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추가로 독일 문화에 대해 또 놀란 일이 있었다. 같은 반에 아주 인형같이 예쁜 아가씨가 있었다. 파란 눈에 훤칠한 키 그리고 흰 피부, 단연 눈에 띄는 외모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 : "어디서 왔어요?"
독일 아가씨: "독일이요"
나 : "혹시,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어려 보이긴 하는데..?"
독일 아가씨: "저요? 17살이요"
나 : "아, 그럼 고등학생인가요?"
독일 아가씨: "네, 맞아요. 어디서 왔어요?"
나 : "전, 한국에서 왔어요"
독일 아가씨: "아, 한국이요. 혼자 왔나요?"
나 : "아뇨, 아이와 함께 어학연수차 왔어요. 그럼, 지금, 방학기간이겠네요? 친구들이랑 안 놀고, 공부하러 왔네요. 멋지네요"
독일 아가씨: "전, 나중에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러려면, 영어를 배워둘 필요가 있어서 온 거예요."
나 : "와우~ 배우, 그 어려운걸... 비용이 엄청나겠는데요?"
독일 아가씨: "아! 전 아빠의 유일한 자식이라, 아빠의 지원이 있어 괜찮아요."
나 : "유일한 자식이요? 형제자매가 없나요?"
독일 아가씨: "아뇨, 전 5남매예요. 저, 엄마와 새아빠 사이의 동생 2명, 아빠와 새엄마 사이의 동생 2명"
처음, 이 표현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선 아직도 재혼가정이라는 사실과 이복동생이 있다는 것을 편하게 이야기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였기에... 아무렇지 않게 자기 상황에 대해 말하는 그 친구를 보고, 우리나라도 이런 편견에서 빨리 나와야 할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 역시도 그 정해진 문화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내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독일에서 온 한국분께 여쭤봤더니, 사실이고, 졸업식에 가면 이혼 부모의 조부모님을 비롯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엄청 정신이 없는 광경이 벌어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상황인 것이다.
나 : "아, 그렇군요. 벌써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행이네요. 응원해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얼마든지 좋은 기회를 만날 거라 생각해요."
독일 아가씨: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한국에 돌아가세요?"
나 : "저요? 저는 약 2달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비자 문제가 있어서, 더 연장해서 이곳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돌아가기까지 기회 되면 식사나 한번 해요~"
독일 아가씨: "네, 알겠습니다.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해요."
사실, 내가 그 친구들보다 많이 연장자라, 어려워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편안했다. 영어야 존댓말이 없으니, 나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난, 이렇게 날마다 다른 문화를 만나며, 신기해하고, 당황하고, 적응하고 있었다.
워킹맘으로 살아남기 11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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