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원에서 알게 된 외국 친구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그들이 즐기는 홈파티에 자주 초대되어 갔다. 그 친구들은 주로 와인을 마시는데, 최소한의 비용을 가지고 간 나로서는 저녁식사초대에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많이 난감했고, 그래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갔다.
유럽 사람들은 마늘을 한국사람만큼 먹지 않아, 외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마늘향을 싫어한다고 해서 아침식사때 김치를 먹고 꼭 양치를 열심히 하고 갔다. 서로 예의긴 하지만, 각 나라의 특별한 향신료는 존중해 주는 것이 맞을 테지만, 나도 참지 못할 만한 향들이 있어, 나름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아시아 본사에서 외국인 헤드가 한국지사에 방문하면, 종종 한국의 인사동을 구경시켜주거나, 전통식당에 가서, 저녁식사와 약간의 술대접을 했던 기억이 있어,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너무 간이 세지 않은 불고기, 잡채, 삼계탕 같은 음식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료 구하기가 가장 쉬운 불고기를 주로 많이 만들었다.
내가 그리 좋은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불고기는 눈감고도 할 만큼 익숙해 재료를 구할 수만 있으면 만들 수 있었다. 유럽은 냉동된 고기를 먹지 않는다. 신선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정육코너에서 언 소고기를 얇게 썰어달라고 하니, 그 점원이 아주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한 가지 내가 너무 놀랐던 기억은 유럽 사람들은 토끼고기를 먹는다. 그래서 정육코너에 가면 가죽이 벗겨진 토끼가 머리와 팔, 다리가 모두 달린 채로 누워있다. 아...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놀랐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을 테지만, 외국인도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파는 것을 보면 같은 느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드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리고, 유럽은 돼지고기의 삼겹살 부위가 따로 없다. 계속 불고기만을 먹을 수 없어, 돼지고기를 사려고 하니, 삼겹살부위가 없이, 삼겹살 부근의 뼈를 발골하지 않은 부위를 덩어리로 팔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 고깃덩이를 오븐에 넣어 구워 먹는 것 같았다. 고기 덩이가 너무 커서 살 수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해서 자꾸 불고기만 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은 정육코너 점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 고기로 뭘 해 먹냐"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사실, 그날은 그 점원이 냉동고기를 갈아 햄버거 패티를 만들고 있었었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패티를 만드는 걸로 아는듯했다. 난 "한국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니 너무 신기해했다. 점원은 "혹시, 다음에 그 레시피를 알려줄 수 없냐"라고 묻길래, 난 "그렇게 하겠다"라고 했고, 다음번에 다시 냉동고기를 사러 갈 때, 레시피대로 만든 불고기를 덤으로 가져다줬다. 나름...'난, 민간 외교관으로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리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ㅋㅋ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엄마는 외국에 나와서도 안 해도 될 오지랖을 부린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내가 학원 친구들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는 걸 보고 신기해하긴 했다.
유럽에서 신기한 경험을 적다 보니, 앞의 설명이 길었다.
내가 만들어간 홈파티 음식은 어땠을까... 물론, 맛이 없진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친구들이 잘 먹어주어 너무 고마웠다. 내게 레스토랑을 하라며... 이 소리를 한국의 있는 가족들이 들었으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고기에 후추/소금 같은 기본 간 외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그러고서 토마토소스에 넣고 푹 끓이거나, 오픈 넣어 구워내 잘게 찢어, 소스에 찍어 먹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내 느낌에는 거의 매일 돼지 수육을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싼 비용으로 맛난 음식을 제공하고 외국인 친구들의 환대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사실 영어가 아주 편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나보다 더한 상황이라 되려 친구와 얘기하면서 많은 표현과 단어를 더 익혔던 것 같다. 그때 파파고 같은 어플도 완벽하진 않지만 유용하게 활용하였고, 사전이 아닌 인터넷 영어사전은 대화할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했던것 같다. 외국인 친구들은 공부를 하러 오기도 했지만, 주로 애들이 몰타에 어학연수를 하러 온 경우가 많았고, 그 부모나 엄마는 나에 비해 시간이 많았다. 내가 오후까지 계속 수업을 하는 관계로 그 친구들이 주로 저녁에 초대를 해줬던 같기도 하다. 외국 친구들인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문화와 비지니스 환경의 차이 등을 알아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탈리아의 경우 부정부패가 생각보다 많았고, 군대를 가는 것이 의무이긴 하나 한화로 1억 원 정도 담당공무원에게 주면, 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과거 우리나라도 이랬더라고 TV에서 봤던 기억이 있어, 역시 돈이면 다 되나 싶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이 많아, 부강한 나라고 시민의식도 높아 엄청 깨끗할 것이라고 느꼈다가 실망이 컸다. 그 친구는 이탈리아에서 사업하는 환경이 너무 나빠 몰타로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나라들이 인접해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다고 옆 나라 일본이나 중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참 신선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가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찬란한 발전을 이루어낸 것임을 그 친구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전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IT강국이라는 자부심은 최고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 가도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없는데, 유럽은 우리나라 인터넷 보급 초기 수준이었고, WIFI 존을 찾아다녀야 했고, 비번을 알아야만 무료 WIFI를 쓸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습관을 고치지 못해 가서 DATA비용을 많이도 지불했더랬다.
당시, 삼성에서도 애플처럼 태블릿을 출시했고,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 있어, 노트북 대신 태블릿을 가지고 갔다. 태블릿을 본 이탈리아 친구가 감탄해 마지않는 얼굴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이걸로 거의 데스크탑처럼 사용하고, 인터넷만되면 어디서나 게임, 학습, 정보찾기, SNS 등 가능해서 엄청 신기해하며 내 태블릿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는 세계유명 패션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면, 난 이런 멋진 제품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의 국민인것이 엄청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워킹맘으로 살아남기 5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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