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열심히 나의 상황에 맞는 회사를 찾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영국계 회사에 입사할 기회를 얻게 된다. 유럽은 미국계 회사에 비해 다소 업무강도가 낮은편이고, 직원에 대한 회사의 복리후생도 더 나았다. 이번 회사는 투자를 하는 회사로 뉴스에서만 들었던, 글로벌 투자자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었다. 너무도 생소한 단어와 표현들이 늘 긴장하게 했고, 공부하고 찾아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라 늘 뭔가 찾아보고 공부를 하며 일을 했었었다. 그래서 글로벌 investor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관심 있게 검토하고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는 너무 많았고, 어떻게 시간이 흘러간 줄 모르게 시간이 지나, 5~6년을 보내고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게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하듯, 나 역시도 극심한 고민과 싸우고 있었다. 계속되는 회사의 과중한 업무와 그로 인한 피로로 난 아이에게 더욱 소홀하게 되면서 종종 학교에서 가지고 오라는 준비물을 빼먹고 보내기도 하고, 학교에서 시험이 있으나, 미리 공부시키지 못해 당황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도 감사한 것은 아이가 그 순간마다 스스로 강해져 있었고, 그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난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를 고민하고, 나만 성공하는 것이 정말 내가 바라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되었다. 난 나도 성공을 하고 싶은 것이지, 나만 성공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기에 너무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추억을 쌓지 못한 시간을 보충하고,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고자 회사를 그만두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집으로 복귀했을때를 되돌아보면 가족은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대신해 아이를 책임지시고, 집안일을 봐주시던 친정엄마도, 나도, 남편도, 아이도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피투성이 결과였다. 그래서 모두에게 쉼의 시간이 필요함을 더욱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퇴사 후 한달은 예전과 같이 정신이 없었다. 회사일은 할 필요가 없었으나,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일이 되어, 여러 가지로 서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나에게 "천천히... 즐기며... 이건 회사일이 아니니 조금 못해도 된다.."를 속으로 되뇌며, 버텼던 것 같다.
가장 문제가 컷던것은 핑계일 수 있지만, 음식을 배워 볼 기회가 없어, 집에서 내가 하는 음식이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일정한 맛을 내고, 빨리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엄마에게 음식 하는 걸 물어보면 갖은양념!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도 모르겠고, 조금과 약간의 차이도 모르겠고, 말로는 배워서 도저히 엄마의 손맛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계량하고 똑같은 맞을 낼 수 있는 요리학원에 등록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와~ 무슨 순서가 이리도 복잡한지... 흔히 먹는 시금치나물무침도 어렵고, 해물된장찌개도 쉽지 않았다. 사먹는 음식인 줄 알았던 가지편채? 닭꼬치? 안동찜닭? 을 배워볼 기회도 생겼다. 평소에 생선도 고기도 잘 못 만졌던 난 재료 손질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흠.. 가장 잘한 일이라고 느꼈던 것은 특별히 아이에게 줄 간식 만들기! 사 먹지 않고 집에서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나한테도 그럴 기회가 온 것이다. 열심히 이것저것 만들어 주고, 챙겨서 일까.. 아이와 남편은 날이 갈수록 포동포동해졌고, 집안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요즘은 밀키트가 잘 나와서 그냥 바로 사서 조리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라떼~는 이렇게 흔한 음식을 배울곳은 오로지 요리학원 밖에 없었고, 아니면 집안에 계신 솜씨 좋은분들께 배우는 방법 밖에 없었다. 언제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립하고 싶은 요린이라면, 나와 같이 요리학원에 다니는걸 추천해 주고 싶다.
나같은 사람도 배우면 사진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내 요리사진을 올려 본다.
집에서 쉬면서도 늘 다시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었다. 쉬면서도 중간중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계약직으로 3개월, 6개월 단위로 가서 일하고, 감을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계약직은 야근은 시키지 않아 단기간으로 일할만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면 국내회사가 아닌 다시 외국계 회사로 가길 희망하고 있어, 관내에서 운영하는 영어, 일본어 무료 원어민 강의를 꾸준히 듣고 공부하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시 일한다는 보장이 없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다시 일할 수 있으니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본어는 내가 주니어 시절부터 다시 한번 공부해 보고 싶은 언어여서 시간이 될 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난 나만 열심히 살고 치열하게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수업에서는 일선에서 정년퇴직하신 분들이 언어를 배워 나라에서 국제행사가 열리면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전직 교사가 있었고, 딸이 대학생이니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노모도 있었다. 내가 저 나이라면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정말 대단한 분들을 보며 다시 열심히 살 힘을 얻었었다.
어려서 이 영화를 자막없이 보고, 뭔 내용인지 몰랐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자막을 보고 내용을 이해했던터라 사실 일본어 공부를 하며, 이 영화를 자막없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간단한 일본어 노래를 익히고, 따라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가끔 만화 명탐정코난을 보며, 한마디씩 들리는 것에 혼자서 깊은 감동을 받곤한다..ㅋㅋ
그렇게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바쁘게 보낸것도 3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 했고, 남편도 나도 그런 기회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민 끝에 유럽지역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워킹맘으로 살아남기 3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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